주저리 주저리

부모의 상처는 누가 보듬어줄까?

베가지 2019. 11. 26. 12:15

 

나이가 들어 어릴적 기억 속 부모님의 나이 때가 되어보니 이제서야 치유되지 않은 상처가 되돌아봐진다. 

 

고등학교 1학년 아버지는 50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해 봄이 오기전, 아버지는 예전부터 살고 있던 집을 허물고 새로이 집을 짓기로 결정하셨다. 겨우내 찬 바람이 방문을 열때마다 방 안에 스며드는 걸 참아내기 어려우셨던 것 같았다. 할머니는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방에서 꼼짝을 않으셨다. 한 번도 그 집에서 나간적이 없던 할머니(내 기억에 의하면)는 고모댁에서 몇 달을 머무셔야했다. 집을 허무는 바람에 내 친구네 집 한 쪽 켠에 있는 한 칸짜리 방에 달박달박 모여서 우리 또한 몇 달을 지내야했다. 

 

몇 달의 시간이 흐르고 집은 완성이 되고 고모댁에 계셨던 할머니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셨다. 원래의 자리라고 하지만 할머니가 있던 자리는 허물어졌고 낯선 공간이 할머니를 맞이했다. 몇 달의 시간동안 할머니는 예전 모습을 잊어버리신듯 했다. 화장실 가는 것도 밥을 먹는 장소도 편리해졌지만 할머니는 전혀 편해보이지 않았다. 차츰 할머니의 시간은 과거로 회춘하고 있었고 우리는 기억에서 눈에서 멀어져갔다. 몸은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고 가장 최근의 기억부터 잊어버리셨다. 할머니는 원래 태어났던 시간, 가장 자유로웠던 시간으로 돌아가고 계셨다. 

 

그로부터 몇 달. 

할머니는 태어나기 전,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셨다. 작은 고모, 큰 고모가 왔었다. 작은 고모는 할머니를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며 아버지와 어머니를 무척 원망하셨다. 병원에서 제대로 치료하지 않았다고 온갖 욕설과 악담을 퍼부으셨다. 

 

그리고 잊혀진 줄 알았다. 몇 십년이 지났으니...

.

.

.

 

아이가 대학 입시 치르기 며칠 전, 아버지는 아침 일찍 전화를 하셨다. 나이드신 부모님의 이른아침 전화는 반가움보다는 불안함을 동반한다. 혹시... 

다행히 아버지는 수능 치를 아이를 걱정하며 일부러 며칠 전에 전화한다고 하셨다. 그러며 아이키우느라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모든 일이 순리대로 이루어진다며 예전 할머니의 죽음을 이야기하셨다. 작은 고모의 말이 상처가 되어 아직도 그 일이 잊혀지지 않는다며 팔순을 바라보는 아버지는 30년이 지난 그일이 새삼 기억이 나셨는지 아침부터 눈물바람이셨다.

할머니를 병원에 모셔가기도 하셨으나 의사는 치료가 어려울 뿐 아니라 병세 진전이 더디게 오래갈 수 있다는 말을 했다고 하셨다. 한편으로 아버지는 할머니 혼자서 다섯 아이를 키웠을 그 고생이 생각나서 이제 그만 편하게 가셨으면 하는 마음이 크셨다고 했다. 그러고는 눈물을 삼키느라 잠긴 목을 어찌할 방법이 없어 전화를 그만 끊자고 하셨다. 

 

전화를 끊자고 하셨으나 전화는 통화버튼이 제대로 눌려지지 않아 계속 통화중이었고,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벌겋게 변했을 눈과 먹먹하게 잠겼을 목소리와 상관없는 어머니와의 대화. 

 

여태까지 난 아버지의 상처를 들여다볼 생각도 어루만져 줄 생각도 없었다.

아버지는 할머니의 배 속에 잉태되었을 때 이미 할아버지를 잃으셨다. 유복자로 태어나서 아버지의 역할을 한 번도 직접 목격하지도 못했고, 어깨너머로 곁눈질로 배워보지도 못하셨으니 아버지 역할은 어려운 일이었다. 사력을 다해서 아이들을 길러냈으니 할머니의 힘듦을 어떻게 공감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혼자 살아내기도 벅찼을 시간을 할머니 혼자 힘으로 견뎌내고 다섯 아이를 건사했으니... 아버지는 할머니의 힘듦을 그만 덜어드리려 병원에서 지체되는 생명연장의 시간을 줄이고 싶어셨던 것 같았다. 그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 한 작은 고모는 할머니의 무너지는 존엄을 지켜보며 같이 무너졌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릴 생각은 않고 당장 할머니의 돌아가신 책망만을 쏟아내었으니...

 

아버지는 그 상처가 좀처럼 치유되거나 회복되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도 어루만져주거나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이가 없었으니...

 

나이가 들면 몸의 상처 회복력 뿐 아니라 마음의 상처 회복력도 같이 떨어진다.  

우린 어렸을 때 상처가 성인이 되었을 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를 흔하게 들어봤다. 하지만 성인이 되었을 때 상처도 죽을 때까지 영향을 미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성인이 된다는 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힘이 커졌을거라는 생각에 성인의 상처는 들여다보지도 보듬어주지도 않는다. 

 

난 이미 성인이지만 아직 서툴고 미흡하다. 

 

내 아버지보다 더 많이 배웠고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고 부모님으로부터 또 많은 것을 배우고 터득하는 방법까지 알게 되었다. 그래도 아직 서툴고 미흡하다. 잘해왔는지? 잘 하고 있는지? 잘 할 수 있을지? 의문과 걱정이 든다. 

 

사람은 누구나 서툴다. 하지만 그 때의 기준으로 나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왔다. 그러나 평가는 다른 기준을 가진 이들에 의해 이뤄진다. 아무리 최선을 다한들 모든 기준에 맞을리 없다. 내가 부모님에게 섭섭하게 생각하는 일들 또한 나의 기준이다. 부모님은 나름 최선을 다하셨다.

나만 속상했을까? 

 

상처를 보듬어주는 이는 없으나 다른 상처들은 자꾸만 생겨나서 마음을 이리저리 갉아대고 있었다. 상처에 대해 무뎌지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치유할 힘이 없어 방치된다고 보는게 더 맞지 않나 싶다. 이젠 우리가 그 상처를 보듬어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부모님의 상처를 보듬다보면 부모님과 연관된 우리의 상처도 같이 보듬게 된다. 어린 자녀를 이해하는 데 힘을 쏟는 것도 좋지만 부모님의 상처도 이해하려 힘을 써봐야하지 않을까.

 

서툴지만 나이가 들면서 철이 조금씩 드나보다. 요즈음엔 아버지에게 말씀해 드리려 노력한다.

" 아버지 열심히 잘 사셨어요. 더 열심히 살기는 어려워요. 그러니 우리가 이렇게 컸죠. "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