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이야기

텃밭의 김장용 배추와 비닐

베가지 2019. 9. 17. 06:46

기나긴 여름 시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해는 중천에서 기울기를 낮추고 베란다 창 너머로 깊고 길게 들이밉니다. 매일 같은 일상을 지난다고 생각하지만, 어느새 시간이 쌓여 계절이 지나갑니다. 

 

창 너머로 보이는 나무는 짙푸름에서 퇴색되어 가고 있습니다. 

 

도무지 작물이 자라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제때 솎아주지 못하는 게으름이 걸리면 좀처럼 수습이 어려운 상태가 됩니다. 아래 사진처럼요. 

 

 

이게 텃밭인지 버려진 밭인지 구분이 가지 않습니다. 무슨 작물을 심었는지조차 알 수가 ... ㅠㅠ

키우려 씨를 뿌렸던 작물과 어디서 날라온건지 알 수 없는 잡초(이름을 모르니 잡초라 부릅니다)는 같이 거름을 먹고 물을 먹은지라 누가 우세인지 열세인지도 모르게 자랍니다. 이러면 텃밭을 완전히 정리하지 않고서는 발을 디딜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뱀 나올것 같다고. ㅠㅠ

 

 

용기내서 텃밭을 정리하고, 그 자리를 언제 그랬냐는듯 깨끗하게 만듭니다. 예전 흔적이 없습니다. 놀라운 상태입니다. ㅎㅎ

봄에 텃밭을 시작할 때 썼던 것처럼 이번에도 검정 비닐을 둔덕마다 깔아놓았습니다. 봄에 까는 비닐은 다음에 올 여름이라는 계절에 순식간 번식하는 잡초를 방지하긴 위한 목적입니다. 좀 더 게을러지겠다는거죠. 잡초는 뽑기 싫고 텃밭 잡초도 보기 싫고. 눈에 보이지 않으면 안 크는 줄 착각하죠. 

 

 

겨우 1주일 먼저 배추모종을 심은 텃밭입니다. 위 사진과 비교하니 너무 차이가 납니다. 같은 날 찍은 사진인데도 말이죠. 분명 모종탓만 있는 건 아닐겁니다. 거름을 충실하게 잘 넣었거나, 넣었거나, 넣었거나... 그랬겠죠??? ^^;;

 

 

겨울 김장 배추가 중요한게 아니라며 고구마가 아직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텃밭도 있습니다. 햇고구마가 맛있긴 하죠. 고구마 좋아하는 저로서는 탐이 나네요. 내년에는 고구마나 잔뜩 심어놓을까? 고민이 됩니다. 

 

 

고추는 뽑지 않고 놔두었습니다. 가을날 푸른 고추는 좀처럼 여름과 같은 속도로 붉어지지 않습니다. 왜 두었을까요? 푸른고추만 잔뜩 따다가 청을 만들어두면 그걸로 요리할 때 요긴하게 쓸 수 있다는 지인의 말에 넘어간거죠. 올해 김장철에는 생애 첨으로 고추청을 담게 생겼네요. 잘 돼야 될텐데... 잘 되겠죠? ㅎㅎ

 

 

봄에 깔지 않은 비닐을 가을이라고 깔리 없습니다. 그래서 제 텃밭 배추는 비닐이 아닌 흙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중간 중간에 제대로 크지 않고 죽은 모종이 있고, 시들거리는 것도 있습니다. 그나마 잘 적응하고 자라는 중입니다. 많이 크진 않더라도 김장하기 적당하게 노랗게 속이 차 오르길 바래봅니다. 

가을은 여름처럼 잡초가 무성히 속도전을 내는게 아니라 더디 자랍니다. 잡초만 그런게 아니라 작물도 더디 자랍니다. 굳이 비닐까지 깔아가며 흙을 괴롭힐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배추 모종을 심을 때 기존 비닐을 걷어내고 또 비닐을 깝니다. 미세플라스틱이고 뭐고 없습니다. 그냥 깝니다. 

 

 

텃밭 하는 사람들은 일년에 내는 텃밭 사용료로 텃밭에 까는 비닐, 거름, 화학비료, 모종, 농기구 등을 제공받을 수 있다보니 이런 것들을 사용하지 않으면 손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텃밭의 목적이 건강한 먹을거리를 스스로 길러서 먹겠다라는 생각에 치우치다보면, 내 것만 취할 생각에 차후에 일어날 것에 대한 고민이 없어집니다. 화학비료는 풍성한 수확을 위해 수시로 뿌려지고, 제대로 발효되지 않은 거름은 작물에 독을 뿜어댑니다. 농기구는 내가 쓸때만 없다는 생각에 집에 가져가기도 텃밭 한 구석에 숨겨놓기도 합니다. 수확이 끝난 후 비닐은 제대로 거둬지지 않아서 이듬 해 텃밭을 갈아엎을 때 일일이 수거가 어려워 흙과 함께 갈아엎히기 일쑤입니다. 텃밭을 조금만 파내면 곳곳에서 비닐 조각이 식물 뿌리와 엉켜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미세플라스틱이 인체에 해롭다는 건 누구나 알겁니다. 미세플라스틱은 처음부터 미세플라스틱으로 하천이나 땅에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무심코 버린 큰 덩치의 플라스틱이 닳고 깨지고를 반복하면서 작아진 경우죠. 

 

건강한 먹을거리를 위해 텃밭을 경작하면서 별 생각없이 땅에 묻어버린 비닐이 내 입으로 돌아온다는 걸 안다면, 사용횟수 최소 2번 중 한 번은 줄여야 되지 않을까요? 일상적이고 관행적으로 해왔던 일들에 대한 관찰과 성찰이 별것 아닌것 같지만 우리의 일상에 변화를 줄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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